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마녀(2018) 리뷰: 실험체에서 인간으로, 그리고 다시 괴물로

by 낭만달토끼 영화 리뷰 2025. 5. 24.
반응형

마녀 포스터
마녀

'무기'로 길러진 소녀가 선택한 가장 인간적인 복수

어둠 속에서 피어난 존재의 질문

[마녀]는 겉으로 보기엔 SF 액션 스릴러처럼 보입니다. 유전자 조작, 초능력 실험, 비밀 연구소, 기억 상실... 장르적 장치들은 영화 내내 긴장을 고조시키고 관객의 눈을 사로잡습니다. 그러나 그 안을 조용히 들여다보면, 이 영화는 단순히 "강해진 소녀의 액션 활극"이 아니라 "존재의 정체성과 감정의 회복"에 대한 철학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주인공 자윤은 기억을 잃고 시골 마을에서 노부부의 손에서 자라납니다. 그녀는 평범하고 따뜻한 삶 속에서 진짜 가족의 의미를 배워나갑니다. 그러나 어느 날, TV 오디션에 출연한 것을 계기로 '실험체' 자윤을 알고 있는 이들이 그녀를 찾아오고, 잊었다고 생각했던 과거가 다시 그녀를 감쌉니다. 이 영화는 자윤이 "나는 누구인가?"라는 고전적인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는 과정을 따라갑니다. 그녀는 더 이상 단순히 피해자가 아닙니다. 자신을 해부하듯 쳐다보는 과학자들의 실험체도 아닙니다. 영화가 후반으로 달려갈수록 자윤은 스스로의 정체성을 깨달을 뿐 아니라, 자신이 선택한 모습으로 살아가기로 결단합니다. 이 과정이 자윤을 가장 인간적인 존재로 만듭니다.

김다미, 가장 조용한 얼굴이 폭풍을 품다

이 영화를 이야기하면서 김다미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오디션 당시만 해도 무명이었던 그녀는, 이 한 편으로 국내뿐 아니라 해외 관객의 뇌리에까지 깊이 각인되었습니다. '천진함과 광기'를 동시에 표현할 수 있는 배우는 드뭅니다. 김다미는 자윤의 얼굴에 그 이중성을 숨기듯 그려냅니다. 초반 자윤은 어눌하고 순박한 시골 소녀의 모습입니다. 어머니의 병원비를 걱정하고, 소를 돌보고, 친구와 장난치는 그녀는 누구보다 평범하고 따뜻합니다. 하지만 그 속에 감춰진 능력과 과거는, 김다미의 눈빛이 변하는 순간 폭발하듯 드러납니다. 그 눈빛 하나로 관객은 알게 됩니다. 이 소녀는 이미 모든 것을 알고 있었고, 지금까지는 다만 인간처럼 살고 싶었던 것뿐이었다는 사실을. 김다미는 말하지 않고도 그런 과정을 완벽하게 보여줍니다.

잔혹과 연민 사이에서: 박훈정의 세계관

감독 박훈정은 영화 '신세계'를 비롯해 인간 군상에 대한 냉소적인 시선과 날 선 구성으로 잘 알려진 인물입니다. [마녀]에서도 그 세계관은 여전하지만, 조금은 다른 빛깔로 변주됩니다. 기존 박훈정 영화에서 인간은 '도구'이거나 '소모품'이 되는 경우가 많았지만, [마녀]에서 자윤은 '무기'로 길러진 소녀입니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의 무기가 되어주길 바랐던 이들에게서 등을 돌립니다. 그녀는 연민과 따뜻함을 배운 세상, 즉 노부모와의 삶 속에서 진짜 인간다움을 배워버렸기 때문입니다. 이 영화의 묘미는 끝내 자윤이 폭력을 사용해 복수하지만, 그 행위조차도 단순한 분노가 아닌 자신을 지키는 방식이자, 가족을 지키는 방법이었다는 점입니다. 박훈정은 자윤을 통해 묻습니다. "태생이 괴물이라면, 끝도 괴물이어야 하는가?" 자윤은 "아니요"라고 답합니다. 그녀는 선택합니다. 싸우되, 싸움의 이유는 사람이기 때문이라고.

폭력의 미학과 장르의 유희

영화의 액션 시퀀스는 압도적입니다. 총기와 초능력이 뒤섞인 액션은 어느 순간 현실을 뛰어넘는 물리법칙을 품으며 장르적 쾌감을 선사합니다. 특히 실험실에서의 전투 장면은, 슬로모션과 클로즈업을 활용한 시네마틱 한 연출로 강한 인상을 남깁니다. 하지만 이 액션은 단순히 "멋"에 그치지 않습니다. 자윤의 감정 변화와 복잡하게 얽힌 기억이 액션과 함께 흘러갑니다. 그래서 이 영화의 폭력은 마냥 잔혹하거나 선정적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일종의 정서적 해방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오랜 억압 속에서 마침내 자신을 드러내는 감정의 분출, 그것이 이 영화의 액션이 지닌 진짜 의미입니다.

마무리하며: '마녀'가 아닌, '딸'로서 살아가기 위한 싸움

[마녀]는 질문을 던집니다. "나를 만들어낸 환경이 괴물이었다면, 나는 어떤 존재가 되어야 할까?" 자윤은 복수를 선택했지만, 그것은 자기를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녀는 자신을 인간으로 대해준 사람들, 시골의 부모님을 지키기 위해 싸웠고, 그들을 지킨 후에야 진짜로 안심할 수 있었습니다. 그녀가 원했던 것은 단순한 자유가 아니었습니다. 그녀는 딸로서의 삶을 원했고, 사람으로서의 자존감을 되찾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그 인간성을 되찾기 위해 그녀는 괴물 같은 방식으로 세상과 맞서야 했습니다. [마녀]는 그래서 액션 영화이면서 동시에 성장 영화이고, 존재에 대한 성찰의 기록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김다미라는 배우의 발견이라는 점에서 한국 영화사에 기록될 만한 순간이기도 했습니다.

[마녀]의 철학적인 메시지

실험체로 태어나 살해 도구로 길러진 존재가, 자신을 인간으로 대해준 가족을 위해 스스로의 능력을 사용하기로 '선택'했다는 점에서 이 장면은 단순한 액션이 아니라 정체성과 윤리에 대한 통찰로 확장됩니다.

정체성의 선택: 본성이냐, 양육이냐

자윤은 생물학적으론 '괴물'입니다. 그녀의 신체는 개조되었고, 인간의 한계를 초월하는 능력을 가졌으며, 태어난 이유조차 '무기'로서의 쓰임을 전제로 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시골 부모 밑에서 인간적인 삶을 배웠고, 결국 자신이 괴물이 아닌 인간으로서 살아가고 싶다는 욕망을 품게 됩니다. 이것은 고전적인 철학적 논쟁인 '본성과 양육'의 현대적 재해석입니다.

"사람은 태어나는가, 만들어지는가?"

자윤은 이 질문 앞에서 스스로의 인간성을 증명하듯, 폭력을 가하되 그것을 복수나 파괴가 아닌 보호와 자각의 수단으로 삼습니다. 이것은 그녀가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스스로 선택'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인간 개조와 자유의지: 데카르트와 실존주의 사이

실험체로서 자윤은 '자아'가 결핍된 존재처럼 보입니다. 인간 개조 기술의 산물인 그녀는 마치 철학자 데카르트의 '생각하는 기계'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자윤은 단순히 입력된 명령에 반응하는 존재가 아니라, 자신의 삶과 기억을 해석하고 새로운 결정을 내리는 주체로 등장합니다. 여기서 영화는 실존주의와 맞닿습니다. 대표적인 실존주의자 장 폴 사르트르는 말했습니다. "인간은 본질보다 존재가 앞선다. 인간은 스스로를 정의하는 존재다." 자윤이 실험체라는 '정해진 본질'에서 벗어나, 스스로의 삶의 의미를 만들어내는 주체로 거듭난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철학적으로 깊은 울림을 줍니다.

철학적인 메시지 요약

1. 나는 누구인가? 자윤의 정체 고백 자아의 회복과 주체성

2. 어떻게 살 것인가? 스스로 능력을 사용하는 선택 실존주의적 자유의지

3. 인간이란 무엇인가? 괴물로 태어나 인간처럼 살아가는 삶 본성과 양육, 윤리의 교차점

4. 기억은 어떻게 삶을 지배하는가? 기억의 선택적 회복 존재의 의미를 구성하는 기억의 힘

그녀는 '태어난 대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전합니다. 괴물로 태어난 자가 인간으로 살아가기로 '선택'하는 것. 이보다 더 철학적인 선택이 있을까요?

결말분석 및 감상평

자윤의 정체: 피해자인가, 가해자인가

자윤은 처음에는 무력하고 착한 소녀처럼 보였지만, 실은 모든 것을 기억하고 있는 완벽한 계획자였습니다. 그녀는 순수한 피해자 코스프레를 이용해 적들을 안심시키고, 복수를 위해 철저하게 행동합니다. 자윤이 갑자기 말투를 바꾸며 귀공자에게 "죽여줄까?"라고 묻는 장면에서 관객은 충격을 받습니다. 이 장면은 캐릭터의 양면성(순진한 얼굴 속의 괴물)을 극명하게 드러냅니다. 그녀는 '인간성'과 '도구로서의 존재' 사이에서 갈등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생존과 복수를 위해 모든 수단을 정당화합니다.

복수인가, 자기 회복인가

자윤의 행동은 단순한 복수가 아닙니다. 실험체로 살았던 과거에서 벗어나려는 자기 정체성 회복의 과정이기도 합니다. 그녀는 시설에서 벗어나 일반 가정에 입양되어 평범한 삶을 잠시나마 경험하지만, 결국 능력 때문에 다시 끌려가야 하는 운명을 마주하게 됩니다. 결말은 그 운명을 거부하고, 능력을 이용해 삶의 주도권을 다시 쥐는 과정입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그녀는 점점 더 비인간적인 존재로 변화하고 있다는 인상을 줍니다. 그녀의 복수는 감정의 분출보다는 냉정하고 계산적인 계획의 실행이라는 점에서 전형적인 복수극과는 다릅니다.

마녀라는 상징

영화 제목의 '마녀'는 단순히 초능력을 가진 여성이라는 의미를 넘어서, 두려움의 대상이자 규범 밖 존재를 상징합니다. 자윤은 통제할 수 없고, 이해할 수 없으며, 사회에 순응하지 않는 존재로 그려집니다. 자윤은 주체적으로 자신의 힘을 인식하고 사용합니다. 그 모습은 전통적인 '마녀'가 억압된 여성의 메타포였던 점과 연결되며, 이 작품의 자윤 역시 억압과 실험의 대상에서 삶의 주체로 변모합니다.

다른 존재의 등장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엔딩에서 자윤은 자신과 유사한 다른 존재(다른 마녀)를 만납니다. 이 장면은 단순한 후속작 떡밥이 아니라, 자윤이 자신만이 아닌 더 큰 시스템과 싸워야 할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이는 영화가 단순히 개인의 복수극에서 더 넓은 '창조자 대 피조물'의 이야기로 확장될 수 있음을 암시합니다. 마녀 프로젝트가 아직 끝나지 않았고, 자윤은 이제부터 시작될 전쟁의 서막에 선 존재라는 것을 말합니다.

결말의 의미: 이중적 서사 구조

[마녀]의 결말은 이중 서사 구조의 완성을 보여줍니다. 표면은 기억을 잃은 소녀가 주변의 위협에 휘말리는 이야기이지만 실제는 초능력자 소녀가 스스로를 감추고 적들을 유인해 제거하는 이야기입니다. 이 구조는 관객에게 스릴러적 반전의 쾌감을 주면서 동시에 캐릭터의 내면과 설정에 깊이를 더합니다. 자윤은 선도 악도 아니며, 생존을 위한 존재일 뿐입니다. 이 점이 마녀를 단순한 히어로나 빌런으로 정의하지 못하게 만듭니다.

결론

[마녀]의 결말은 단순한 복수극을 넘어서, 자기 존재를 되찾고 세계를 거부하는 강한 캐릭터의 선언입니다. 자윤은 더 이상 실험체도, 피해자도 아닌 자기 능력의 주인이며, 앞으로 더 큰 전쟁을 예고하는 인물입니다. 그녀의 냉정함과 잔인함, 그리고 인간적인 감정 사이의 균열은 이 시리즈를 단순 액션 스릴러가 아닌, 심리적이고 철학적인 주제까지 탐색하는 작품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이런 영화 어떠세요?

2025.05.21 - [분류 전체 보기] - 빌리 엘리어트 명작 리뷰: 계급, 꿈, 그리고 가족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