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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웨일: 우리는 누군가에게 어떤 존재였는가

by 낭만달토끼 영화 리뷰 2025. 4.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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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웨일 포스터
더 웨일

 

[더 웨일]은 600파운드(약 270kg)가 넘는 몸무게로 살아가는 한 남자의 이야기이자, 고통을 짊어진 채 살아가는 인간에 대한 고요하지만 무거운 고백입니다. 영화는 거의 대부분이 찰리(브렌던 프레이저)의 좁은 거실 안에서 벌어집니다. 그 공간은 누추하고 답답하지만, 동시에 그의 삶 전체를 압축해 보여주는 무대이기도 합니다. 찰리는 과거의 선택으로 인해 가족과 단절되었고, 연인의 죽음 이후 자포자기 상태로 폭식과 자기 파괴를 반복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그 안에는 여전히 사랑하고 싶은 마음, 용서를 구하고 싶은 마음, 누군가에게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은 마음이 살아 있습니다. 이 영화는 단순히 비만이라는 외적인 조건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 몸 안에 깃든 내면의 복잡성과 외로움을 정면으로 바라봅니다. 대런 애러노프스키는 인간의 극한을 파고드는 데 익숙한 감독입니다. '레퀴엠', '블랙 스완' 등에서처럼 이번 작품도 극단적이지만 결코 비현실적이지 않은 고통을 그립니다. 특히 카메라는 찰리의 몸을 잔인하거나 비하적으로 보여주지 않습니다. 오히려 정직하게, 때로는 부드럽게 담아내며, 그를 똑바로 바라보고 마주하라고 강하게 요구합니다. 

인물들 사이의 관계: 사랑과 절망의 무게

찰리와 엘리의 관계는 복잡합니다. 찰리는 그녀가 8살일 때 가족을 떠났고, 엘리는 그를 아버지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엘리 또한 깊은 상처를 안고 있는 인물입니다. 냉소적이고 공격적인 그녀의 말투 속에는 버림받은 아이의 분노와 애정이 공존합니다.
“넌 아무것도 몰라. 넌 날 떠났잖아. 그냥 죽어버려.” – 엘리
“난 네가 놀라울 정도로 멋지다는 걸 말해주고 싶었어. 네가 나를 얼마나 싫어하든 간에.” – 찰리
이 두 인물은 서로를 마주 보며 상처를 찌르고, 동시에 치유를 시도합니다. 찰리는 엘리에게 다시금 아버지로 존재하고 싶어 하고, 엘리는 그런 아버지를 받아들이고 싶지 않으면서도 내심 그가 진심이기를 바랍니다.
한편, 찰리를 돌보는 유일한 친구인 간호사 리즈(홍 차우 분) 역시 이 관계에서 중요한 인물입니다. 리즈는 자신의 형제를 잃은 아픔을 찰리와 공유하며, 그를 돌보지만 점점 그의 자학적인 삶에 분노를 느낍니다. 영화 후반부에 이르러 그녀가 감정을 폭발시키는 장면은 인상적이며 이 장면에서 리즈는 관객이 느끼는 무력함과 애정을 대변합니다.
“넌 죽을 거야, 찰리. 제발 그냥 병원에 가. 제발 좀 살아!” – 리즈

연기, 대사, 연출: 특히 브렌던 프레이저의 연기

이 영화의 핵심은 단연 브렌던 프레이저의 연기입니다. 특수 분장을 통해 육중한 몸을 표현했지만, 진짜 무게는 그의 눈빛과 목소리에 있습니다. 그가 흘리는 눈물, 문장을 뱉을 때의 떨림, 마지막에 문을 향해 손을 뻗는 장면까지, 모두가 찰리라는 인물의 무게를 체화하고 있습니다. 그의 눈빛, 말끝의 떨림, 작은 손짓 하나하나에 수치심과 사랑, 희망과 절망이 교차합니다. 프레이저는 1990~2000년대 초반 할리우드의 블록버스터 스타였지만, 이후 오랜 시간 업계에서 잊혔습니다. 그래서인지 이번 연기는 그의 커리어 전체를 관통하는 자기 고백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는 상처받고 버려졌지만 여전히 무언가를 줄 수 있다고 믿는 인물을 통해, 자신의 존재와 배우로서의 가치를 완전히 증명해 냈습니다. 이 연기로 그는 제95회 아카데미 시상식 남우주연상을 수상하며 감동적인 복귀를 이뤘습니다. 조연 배우들도 인상 깊습니다. 세이디 싱크는 찰리의 딸 엘리를 연기하며, 분노와 혼란 속에서도 사랑을 갈구하는 10대의 복잡한 내면을 보여줍니다. 그녀는 결코 단순한 ‘못된 딸’이 아니며, 아버지를 향한 모순된 감정을 정밀하게 표현합니다. 홍 차우는 찰리의 유일한 친구 리즈 역을 맡아, 냉소와 연민 사이를 오가는 절묘한 감정선을 보여줍니다.
또한 영화의 대부분은 실내, 특히 찰리의 거실에서 펼쳐집니다. 이는 원작이 연극이라는 점에서 비롯되지만, 대런 아로노프스키 감독은 이를 영화적으로 재구성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좁은 공간이 단조롭지 않게 보이도록 카메라 워크를 섬세하게 조절했고, 빛과 그림자를 통해 감정의 흐름을 묘사했습니다. 특히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 밝은 빛이 찰리의 얼굴을 감싸며 떠오르는 순간은, 죽음인지 해방인지 모를 신비로운 여운을 남깁니다.

음악 또한 절제되어 있으며, 감정의 과잉을 피하면서도 장면마다 정서를 정확히 짚어 냅니다. 영화 전반에 걸친 정적은 오히려 관객의 몰입을 강화하고, 찰리의 숨소리, 바닥이 삐걱이는 소리 등 생활음이 더 강하게 들립니다. 이러한 연출은 마치 무대 연극을 눈앞에서 지켜보는 듯한 생동감을 줍니다.

종교, 구원, 그리고 ‘진실한 순간’

[더 웨일]은 동명의 연극을 원작으로 하며, 구조도 매우 연극적입니다. 한정된 공간, 등장인물 간의 치밀한 대화, 심리의 축적 등은 마치 무대 위에서 벌어지는 인간 드라마를 보는 듯합니다. 이 영화에서 중요한 주제는 '구원'입니다. 찰리의 연인은 종교적 죄책감에 시달리다 생을 마감했고, 엘리는 인터넷에 글을 올리고 관심을 구걸합니다. 찰리는 학생들에게 “진실하게 써라.”라고 가르치지만, 정작 본인은 그동안 진실을 회피해 왔습니다. 그가 마지막에 이르는 지점은 단순한 죽음이 아니라 자기 고백을 통한 구원, 딸과의 재회, ‘진실한 순간’에 도달하는 것입니다. 마지막 순간이 멀지 않은 찰리는 절박한 목소리로 외칩니다. "내 인생에서 단 한 가지라도 잘한 일이 있었으면 해!" 이 말은, 모든 인간의 절실한 바람일지도 모릅니다. 누구나 '나는 가치 있는 존재였나?’, ‘누군가에게 의미 있는 존재였었나?'를 묻게 됩니다. 마지막 장면에서 찰리는 스스로 일어나 걸음을 내딛습니다. 이 장면은 감동적이며 동시에 상징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그가 육체적 무게를 벗고 가벼워지는 순간, 진실에 닿고자 한 그의 의지가 화면을 가득 채우며 영화는 끝이 납니다.

감상평

[더 웨일]은 결코 편하게 볼만한 영화가 아닙니다. 비만, 동성애, 종교, 자살, 가족 해체 등 다양한 불편한 주제를 직시하는 영화입니다. 그리고 주인공의 모습은 단순히 ‘희화화된 비만’이 아니라, 깊은 상처의 결과물로서 다뤄집니다. 때문에 이 영화를 보기 전에는 감정적으로 준비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만약 자신 또는 주변의 누군가가 깊은 슬픔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면, 이 영화는 그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응시하는 법을 보여줄 것입니다. 또한, 상처 입은 인간이 어떻게 관계 속에서 다시 살아갈 수 있는지를, 희망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아픈 희망으로 그려냅니다. 깊은 감정 연기를 보고 싶거나 가족 또는 관계의 상처를 다룬 드라마를 선호하시는 분, 인간의 고통과 구원이라는 주제에 관심 있고 무대극의 밀도와 구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감동적으로 영화 감상을 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더 웨일]은 인간의 고통, 죄책감, 그리고 작지만 진실한 소망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강렬한 드라마입니다. 단순히 비극적인 이야기를 넘어서, 우리가 진심으로 누군가와 연결되기를 바라는 그 마음을 깊이 들여다보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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